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할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 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빌립보서 4:8.

오늘 너희 주(יהוה) 하나님(אלהים)이 말씀하시되

성결한 생활은 예배의 생활이다. 참된 예배는 성화된 마음, 즉 나와 연결된 마음에서만 일어날 수 있습니다.

요한이 밧모 섬에서 유배 생활을 하는 날을 나의 날로 거룩하게 했을 때, 내가 그의 영으로 요한에게 내 왕국을 열었을 때, 그 영광스러운 곳의 성격이 무엇이었는가를 기억하는가? 예배하는 분위기입니다.

예배란 무엇입니까? 예배는 서로를 소중하게 여기는 너와 나 사이의 지속적인 명예와 사랑의 흐름이다.

“너는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나는 너를 사랑한다.” 이사야 43:4.

예배는 시험하는 자리가 아니라 쉬는 자리입니다. 지속적인 예배의 장소에 도착하려면 당신은 내가 누구인지, 그리고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당신에게 값없이 준 것이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흔들리지 않게 아는 가운데 걸어야 합니다.

그러나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나타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 통달하시느니라. 사람 속에 있는 사람의 영 외에는 사람의 생각을 누가 알 수 있겠습니까? 이와 같이 하나님의 생각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는 자가 없느니라.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니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으로 말하느니라 영적인 생각과 영적인 말씀을 결합하여 영의 가르침을 받는 사람들입니다. 고린도전서 1:2-9.

예배는 아래가 아닌 위에 사는 것입니다. 두려움과 어둠의 노예상태에 갇힌 세상에서 자유롭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두려워하는 마음, 불안한 마음, 산만해진 마음은 예배 가운데 쉴 수 없습니다. 나를 치료자, 공급자, 의로움, 평화, 선한 목자, 성화자, 보호자, 보호자로 알지 못한다면 예배 중에 쉴 수 없습니다.

걱정과 예배는 함께 가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걱정하고 있으면 나를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네가 나를 안다면 결코 걱정하지 않을 것이다. 왜? 당신은 당신을 대적하는 모든 것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가 너희 편이라면 누가 너희를 대적할 수 있겠느냐? 그리고 정답은 아무것도 없고 아무도 없습니다. 당신에게는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기쁨이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그 기쁨을 자신의 것으로 결코 취하지 않았다면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빼앗아 갈 수 있습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작은 것을 잃지 않은 사람들.

그러므로 너희도 지금 근심하고 있다. 그러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 요한복음 16:22.

예배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생각을 조심해야 합니다.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당신의 마음은 우리가 만나는 성소입니다.

그들의 겁을 두려워하지 말며 근심하지 말고 오직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대하여 묻는 자에게는 항상 대답할 것을 예비하되 온유와 경례;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한 행실을 욕하는 자들이 비방을 받는 일로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 베드로전서 1:3-14.

그곳이 은밀한 곳이요, 지성소이니라. 그 안에는 모든 것이 평화입니다.

주님 안에서 항상 기뻐하십시오.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당신의 온유한 영을 모든 사람이 알게 하십시오. 주님이 가까이 계십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빌립보서 4:4-7.

여기서 시작하세요. 너는 나를 기뻐한다. 는 어때? 당신에게 생명이 있다는 것. 당신이 치유되었다는 것입니다. 당신이 제공되는 것. 나에게서 오는 이 선물을 기뻐하라. 그러면 나는 너희에게 점점 더 많은 것을 주겠다. 너희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겠다.

내 아들은 내가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들을 찾고 있다고 너희에게 말씀하셨다. 그것은 어떻게 생겼나요? 그것은 위의 것을 추구하며, 내 생각의 더 높은 차원에서 살고 있다. 그리고 당신은 할 수 있습니다. 나는 너희보다 더 높은 내 생각과 말을 너희에게 주었으나, 기록된 나의 말씀은 쉽게 접근할 수 있고, 내 영에 의해 너희 안에서 그리고 내 아들에 의해 너희에게 부어지는 나의 말씀이니라.

예배는 사랑의 더 높은 길, 영원한 사랑이며, 그것은 당신의 정신과 마음의 모든 어두운 곳을 비춰 당신의 길을 빛과 평화로 오르는 길로 만들어 줍니다. 사랑의 빛은 생명의 빛이며, 내 아들 안에서 너희 마음에 빛났다. 그리고 일단 그 빛의 길을 찾으면 당신의 삶은 마음 속에서 노래가 됩니다. 자유의 노래인 모세의 노래와 구원받은 자의 노래인 어린양의 노래입니다.

네가 어렸을 때에 내가 네 손을 잡고 종살이하던 곳에서 너를 인도하던 것 같이 네가 환난의 골짜기에 있을 때에는 거기서 노래하라 그 환난의 골짜기가 복의 골짜기로 들어가는 소망의 문이 되리라 .

이제 내가 하려는 말을 주의 깊게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먼저 너희가 평안할 수 있도록 너희 염려를 감사함으로 나에게 맡겨라, 평안이 없고 너희를 다시 그들의 어둠 속으로 끌어들이려고 애쓰는 자들 가운데로 행하는 것에 관해 내가 위에서 설명한 구절 바로 다음에 나오는 이 구절을 읽어라. 사탄은 믿지 않는 사람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자신의 뜻을 행하도록 사로잡았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다시 그 함정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할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 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빌립보서 4:8-9.

이제 이것은 당신이 즉시 요청한 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는 것처럼 보일 때 불안이 다시 돌아오지 않도록 완전한 해결책을 기다리면서 문제의 처리를 나에게 맡긴 후 그 평화를 유지하는 방법을 알려줍니다. 나는 그를 그의 운명에서 막으려는 악한 자에게 이끌리는 자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나의 종 바울에게 이것을 가르쳤다.

만약 당신이 가족이나 직장 동료로서 당신의 삶에 있는 사람들의 결점에만 집중하는 함정에 빠지게 된다면, 내 말은 당신이 인생의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고 살고 일하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당신은 미끄러운 경사면에 있습니다. 당신은 그들이 매일 당신 주위에 있기 때문에 짜증이 나고 기분이 상할 수밖에 없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이런 종류의 판단, 부정, 분노, 자기 연민의 정신을 받아들이는 것은 당신에게 최선의 이익이 아닙니다. 실제로는 나의 의가 아닌 자기 의의 한 형태입니다. 사람이 노하는 것은 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

그리고 이 사람 주변에 있을 때마다 이러한 일에 마음을 쏟고, 배우자나 가족이 일주일 내내 하루 24시간 일한다면 분노는 공격과 증오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과 같아집니다.

당신은 주의가 집중되는 곳, 마음이 있는 곳과 같이 됩니다. 다른 사람의 나쁜 행동에 마음을 집중하고 분노를 키우는 경우, 공개적으로 말하지 않고 뒤에서만 말하더라도 계속해서 혐오감을 느끼고 지켜보고 그들의 말과 행동을 생각하십시오. 어쩌면 당신 자신에게만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당신도 그들처럼 될 것입니다.

당신은 이것이 사실일 수 없고 당신이 결코 그들과 같지 않을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당신이 그들에게 충분히 집중한다면 당신은 그렇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그들의 실패, 그들의 말, 그들의 중독, 그들의 방식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비록 당신이 그들과 헤어지고 당신의 삶이 이혼했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당신에게 무엇을 했는지,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 계속 생각한다면, 당신도 천천히 그들처럼 변할 것입니다. 악에 집중하다 보면 악해지고 미움받고 어둠 속에 갇히게 됩니다. 그것은 당신을 늙게 만들고 당신의 삶에서 빛을 앗아갈 것입니다. 당신은 더 이상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정원의 처음 두 개와 같습니다. 아담은 죄를 지었고, 그 책임을 그의 아내와 나에게 돌렸고, 그는 악해졌고, 그의 자녀들은 그것을 악용하여 서로 죽이기 시작했고, 마침내 사람의 모든 생각이 악해졌고, 그리하여 홍수가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선한 생각을 갖고 빛의 말씀에 순종한 한 사람이 온 인류를 구원했습니다. 노아는 그 시대에 유일한 흠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의 행동에 초점을 맞추지 않았습니다. 나는 노아가 나와 함께 걸었다고 말한다.

이는 노아의 족보이다. 노아는 그 시대에 흠이 없는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창세기 6:9.

그리고 거기에 당신의 대답이 있습니다. 악하고 악한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노아는 나와 함께 걸었고 그것이 그를 거룩하게 하였으며 너희에게도 똑같이 할 것이다.

성화된 삶은 악 아래가 아니라 악 위에서 자유롭게 살아갑니다. 그것은 당신을 그리스도와 함께 내 오른편에 앉히십니다. 그러나 거기에 머무르려면 마음을 아래에 두지 말고 위에 두어야 합니다. 더 높은 생각은 더 높은 길을 만든다. 낮은 생각은 낮은 길을 만든다.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냐? 지혜의 온유함으로 자기의 선행을 나타내게 하라. 그러나 마음에 독한 시기와 이기적인 야망이 있으면 교만하여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을 하지 마십시오. 이 지혜는 위에서 내려온 것이 아니요 땅에 속한 것이요 육에 속한 것이요 마귀의 것이니라. 시기와 이기심이 있는 곳에는 무질서와 모든 악한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흔들리지 않고 위선이 없나니 그리고 의의 열매를 맺는 씨는 화평케 하는 자들에 의해 화평으로 뿌려집니다. 야고보서 3:13-18.

예수님께서 나사렛에서 그분을 돌로 치시고 그분의 부르심에서 끌어내리려는 자들 가운데로 걸어가셨던 것처럼 나와 함께 그 길을 걸어가십시오. 그분은 그들에게 집중하지 않으셨고, 단지 그들을 꿰뚫고 지나가셨습니다. 그분이 그들을 미워하셨나요? 아닙니다. 그분은 그들이 거부한 그들을 사랑하셨지만, 그것이 그분이 나와 함께 걷고 아름다운 것들을 생각하시는 것을 막지는 못했습니다. 그는 단지 그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그들을 용서하라고 나에게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정말로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영광의 주님을 결코 십자가에 못 박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사람들을 시정하셨지만 결코 그들과 연합하지 않으셨고, 그들에 대한 악한 생각에 사로잡히지도 않으셨습니다. 그의 눈은 오직 나에게만 있었고 나를 위해 그들을 구해주었다. 그리고 그것은 나의 종 바울이 가졌던 것과 같은 마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내 말씀을 전파하는 것을 막으려는 자들의 공격 속에서 오직 참되고 사랑스럽고 탁월한 것만 생각하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나는 거룩하다고 주장하는 악하고 패역한 백성 가운데 살고 있는 나의 선지자 예레미야에게도 같은 말을 했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돌아오면 내가 너희를 회복시켜 내 앞에 서게 하리라 그리고 네가 무가치한 것에서 귀중한 것을 빼내면 나의 대변인(대언자)이 될 것이다. 그들은 당신에게 의지할 수 있지만 당신은 그들에게 의지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내가 너로 이 백성 앞에 견고한 놋 성벽이 되게 하리라. 그들이 너를 대적하여 싸울지라도 너를 이기지 못할 것이며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너를 구원하며 건져내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러므로 내가 너를 악인의 손에서 구원하며 포악한 자의 손에서 구원하리라.” 예레미야 15:19-21.

내가 예레미야를 백성 중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였으되 예레미야가 그들 가운데 거하여 예루살렘을 정복할 때에 그들을 무너뜨린 일을 그들에게 경고하였으니 그들이 그의 말을 따랐더라면 그들에게서 구원을 받았을 것이니라 그들에게 나의 것이었으나 그에게는 영향을 미치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아래에 살지 않고 위에 살았습니다. 포로로 잡힌 사람들 속에서 그는 자유롭게 살고 움직였습니다. 당신은 세상에 있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너를 세상에서 데리고 나가지 않는다. 그러나 네가 나와 ​​함께 걸으면 어떤 재앙도 너에게 임하지 않을 것이다.

악과 가까이 있지 말라. 직장이나 집에 있어도 통제할 수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당신의 자녀처럼 당신에게 권한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결코 허락하지 말고, 당신의 권한에 속하지 않는 악한 사람들과 친분을 맺지 마십시오. 그들을 나에게로 인도하기 위해 밖으로 이끌어라. 그러나 당신이 그들의 수준에 대해 친숙함을 갖고 교제한다면 당신은 그들처럼 보이고, 그들처럼 말하고, 그들처럼 걷고, 그들처럼 될 것입니다. 단지 그들이 당신 주위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의 경건치 못한 잡담에 말려들지 마십시오. 당신이 그들에게 굴복하지 않는 한 당신을 논쟁과 논쟁으로 끌어들임으로써 당신을 그들의 수준으로 끌어내리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그들에게 더 높은 생활방식을 갖도록 영향을 주어야 합니다. 같은 곳에 있어도 서로 헤어져라.

당신의 말씀을 발견하고 그것을 삼켰으니, 당신의 말씀은 나에게 기쁨이 되고 내 마음의 즐거움이 되었습니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나는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았나이다 나는 떠들썩한 무리 속에 앉지도 않았고 그들과 함께 기뻐하지도 않았습니다. 주의 손이 나를 붙들었으므로 내가 홀로 앉았나이다 예레미야 15:16-17.

이 규칙에 따라 너희 마음 속에서 나를 성화시켜라. 예의 바르게 행동하고 단지 “예” 또는 “아니요”라는 실제적인 대답을 요구하는 질문이나 현재 진행 중인 일에 대한 구체적인 대답을 요구하는 질문에는 간단히 대답하십시오. 그들을 내 말씀의 진리로 데려오면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다음 다음을 하십시오: (1) 그들에 대해 생각하지 말고, 그 대신 내가 당신에게 생각하라고 말하는 것을 생각하십시오.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할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 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2) 그들에 대해 자신이나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마십시오. 이것은 불을 키우고 다른 사람들이 당신 주위에 있기를 원하지 않게 만들뿐입니다. (3) 그들을 보지 말라, 그들의 외모와 행실을 미워하고, 사랑스러운 것을 외면한다는 의미에서, 악에 갇힌 많은 사람들은 매우 비만하고, 더럽고, 헐벗고, 기타 불경하고 변태적인 행실을 범하고 있다. 또는 행동, 이것을 보지 말고 그들의 욕설과 욕설을 듣지 마십시오. (4) 단지 그들이 당신 주위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들과 친숙한 방식으로 교제하지 마십시오. 그들은 당신에게 그들의 생각과 철학을 말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러면 당신은 그들과 논쟁을 벌이게 될 뿐이며, 더 나쁜 것은 그들이 당신 자신을 의심하게 만들 것입니다. 아무리 오랫동안 기도하고 희생해도 낫지 않고 변화되지 않는 것 같을 때, 저와 여러분.

다른 사람의 악에 집중하여 마음을 오염시키지 마십시오. 그리고 나는 당신에게 더 말할 것인데, 그것들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나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수년에 걸쳐 마음 속에서 그것을 너무 과장해서 실제보다 훨씬 더 나쁜 것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나에게 맡기고 자유롭게 살아라. 당신은 할 수 있습니다. 거스르고 악한 세대 가운데 있던 노아처럼. 그는 그 곳에 살았지만 거기에 속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를 구원하는 나의 방법을 갖고 있어서 그가 그것으로 인해 오염되거나 지치지 않게 되었습니다. 셀라. 나는 물건을 청소했다. 에녹도 마찬가지입니다.

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에녹은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으며 에녹은 모두 삼백육십오 세를 살았다.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그가 없었더라 창세기 5:21-24.

나를 바라보며 예배하는 생활 방식을 살아라. 그러면 네가 감옥에 있든, 어두운 동굴에 있든, 궁전에 있든, 영 안에서 내 왕국으로 바로 걸어가든, 모든 아름다움과 영광이 네 마음과 네 삶의 매일을 가득 채울 것이다. ,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기쁨으로 가득 차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의 기쁨은 실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그런 것들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감옥에서 빌립보인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감옥 너머 내 마음을 바라보면서 기쁨이 넘쳐서 여러 번 감옥에서 풀려나고 심지어 쇠사슬을 풀기까지 했다고 진실하게 썼습니다. 그리고 모든 문을 엽니다. 그리고 그것은 피터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다윗은 사울과 이스라엘 군대를 피해 내 날개 그늘 아래 숨어서 어두운 굴에서 나의 찬송을 불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아름다운 궁전에서 자기 옆 장막 안의 언약궤와 그의 모든 백성과 함께 노래하고 있었다. 적들이 사라졌습니다.

요셉도 종과 감옥에 갇혔을 때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무엇보다도 내 앞에서 살았으며, 어디를 가든지 은총을 받았고, 마침내 파라오로부터 아무런 대가도 받지 않고 자신의 아름다운 궁전을 그에게 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동굴 안의 황량한 섬에 유배된 요한은 그 모든 것보다 마음을 높이고 열린 문을 통해 내 왕국의 보좌실로 바로 들어가 이전에 누구도 들어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고 듣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들 모두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는데, 그들은 그들의 마음이 결코 악한 생각에 머물지 않았으며, 그들을 그 어두운 곳에 가둔 자들에 대한 어떤 생각도 전혀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것들을 거기에 둔 것은 내가 아니었지만 나와 함께 걷는 것은 그것들을 꺼낸 것이다. 나와 함께라면 너는 언제나 아래가 아닌 위를 걸을 것이다. 비난과 수치심과 분노를 멈추십시오. 그러면 나는 당신을 굶주린 사자 굴 가운데서 자유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모두 당신이 주의를 어디에 두는지와 관련이 있습니다.

사랑해요. 당신의 관심은 어디에 있습니까? 예배에 대한 나의 사랑에 대한 것인가, 아니면 너를 가둔 자들에 대한 증오에 대한 것인가? 당신은 결코 갇히지 않습니다. 나는 탈출구를 제공합니다. 그리고 예배입니다. 나와 함께 걸으면 너는 항상 아래가 아닌 위로 나올 것이다. 당신은 무료입니다. 아무도 당신을 속여서 당신의 자유를 빼앗지 못하게 하십시오. 사탄은 아담과 하와에게 그렇게 하여 이 모든 악을 초래했습니다. 나는 나를 사랑하고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너희를 위해 돌아와서 모든 것을 깨끗이 정리하고 싶다. 그것에 대해 생각해보세요. 그러면 당신은 나의 기쁨을 공유하여 당신의 기쁨이 완전해질 수 있습니다. 누구도 당신의 기쁨을 훔치지 못하게 하십시오. 그리고 당신이 그들 안에 있는 악에 대해 계속 생각한다면 그들은 그렇게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없도록 삼가라.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고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러워지느니라 히브리서 12:15.